연대와 문헌

노자 (老子), 인삼을 영약(靈藥)이라고 설파하였다.

인삼에 대한 약초 효능 최초 발견된 시기. 삼(參)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함. "急就章" 장중경의 “상한론(傷寒論)”에 인삼의 처방 등장, 최초의 인삼 의약 기사이다. 도홍경의 “ 신농본초경, 명의별록(神農本草經, 名醫別錄)”에 인삼을 상약 (上藥)으로 분류하였다.

“해약본초(解藥本草)”에 최초로 인삼이 마치 사람 같다는 표현이 나왔다.

"고려인삼"이라는 명칭은 이때 산양삼 (山養蔘,長腦蔘)을 번식하여 인공재배를 시도하면서 유래되었다. 마르코폴로 (이태리인)의 <동방견문록>에서 최초로 인삼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였다. 양직삼재배 (養直蔘栽培)가 토착화되었다.

명종 22년 이시진 (李時珍)이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저술하고 인삼에 대한 기사를 썼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술하였고, 인삼의 처방이 1/3이상 차지했다. 네덜란드인에 의하여 최초로 서양으로 인삼이 소개되었다. "조선표류기" 일본에서 처음으로 인삼재배를 시도했으나, 토양이 좋지 않아 결국 실패하였다. 의주상인 임상옥, 청나라때 베이징 상인들의 불매 동맹에도 고려인삼을 원가의 수십배로 매각하였다. "러시아 C. A. Meyer는 을 저술, 간행하였다." 러시아의 C. A. Meyer는 고려인삼의 학명 " Panax ginseng var. ginseng "으로 정했고 그 후 " Panax ginseng C. A. Meyer "로 수정하여 발표하였다. 고종 38년때, 미국에서도 화기삼 재배를 시작하였다. 홍삼전매령(紅蔘專賣令)을 제정, 공포하고 구한국시대의 홍삼전매법을 폐지하였다. 민간의 유통을 막기 위해 "정부가 관장하는 공장"이라는 의미에서 "정관장" 이라는 상표를 붙이고" 독점판매하였다. 2월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장수학 심포지엄에 인삼계 대표인사들이 참석하여 고려인삼을 학술적으로 발표, 인삼종주국으로서의 명성을 선양하였다.

1986 : 홍삼전매법 폐지로 내국인에 대한 제한판매가 해제 됨.

1995 : 기존 인삼사업법 폐지되고 인삼산업법 제정. ( 전매제도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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